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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천재 작가 오스카 와일드! 

  

 ( 자신감에 찬 오스카 와일드 )

오스카 와일드는 더블린의 웨스트랜드 21가에서 아일랜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와일드 경은 아일랜드 대표적인 외과의사이며,

그의 어머니 제인 프란체스카 엘지는 성공적인 작가였습니다.  

부유하고, 아일랜드 유명 집안에서 태어났던 오스카 와일드는

평소 성격이 아주 게으른 것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천재작가로 불리는 그가 성실까지 갖구고 있으면, 저같은 일반인들은 억울할듯 합니다!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고 알려진 그는 날카롭고 약삭빠른 재치로 유명하며

후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으로 가장 성공한 극작가이며,

가장 알려진 유명인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남과 다르고 특별하다는데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에게 "평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탐미주의를 지향했으며, 그의 작품들 역시 그의 성향을 잘 보여줍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살로메) 등을 보면 그의 성향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특유의 위트와 날카롭게 비꼬는 언어유희, 모순과 쾌락으로 점철된 인생자체가

그의 모습이라 생각하셔도 됩니다

다른 작품들은 잘 모르시겠죠?! 저 역시 잘... 으흐흐흐

그는 우리에게  이 작품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행복한 왕자" 보석을 주는 행복한 왕자!

"어린 왕자" 와는 다른 이야기니깐,  헷갈리시면 아니되요!

독특해 보이는 그에게는 몇가지 일화가 있는데요~~

강연회장에 191 거구의 오스카 와일드는 초록색 빌로드 재킷에,

반바지, 하얀 비단 양말을 신고 나타나 막힘없는 물 흐르는 듯한 유창한 강연을 펼치면,

거만하게 보였던 그에게 모두 매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평상시에 여성적인 취향을 느낄정도로 옷을 입고 다니며,

술은 무척이나 잘 마셨고, 카드도박을 하여도 지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옷도 잘입어, 말도 잘해, 술과 도박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던 오스카 와일드

누구나 그에게 푹 빠져버렸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을 자기의 편으로 만들게 하던 그에게도

오스카 와일드 자신이 빠져들고 마는 치명적 매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프레드 더글라스" 16세의 차이가 나는 옥스퍼드를 졸업한 미남 귀족소년으로써

그와 함께 한 4년동안 오스카와일드는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여,

걸작들을 쏟아지게 만들었고, 부와 명예 모든 것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주드 로 와도 흡사합니다!)

부와 명예, 사랑 모든 것을 얻게 된 오스카 와일드 !

그의 행복은 영원할 까요?!

영원한 행복은 없다고 하지요~~

알프레드 더글라스의 아버지가 오스카 와일드를 동성애자로 고발하고 마는데요.

알프레드 더글라스에게는 사실 오스카 와일드와의 연애를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수단으로 여겼고,

그의 아버지는 이것에 당연히 수치심을 느끼며, 결국 오스카 와일드를 고발하게 됩니다.

오스카 와일드도 "명예 훼손죄"로 맞고소를 하지만,

( 드디어 막장의 끝이 보입니다.. )

결과적으로는 패소를 하며, 2년간의 복역과 중노동, 명예와 재정파산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그것 뿐이면 그래도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병도 걸리고, 아내에게는 이혼도 당하며

자식들도 못보게 되는 최악중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맙니다...

이때 감옥에서 쓴 편지를 모아 오스카는 "옥중기" 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데

전 애인이자, 재산 관리인인 로버트에게 쓴 글입니다.

그가 죽은후 60년 뒤에 공개되었는데,

알프레드에 대한 원망과 반성, 회환, 참회의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저라도 빡...;; 화날 것 같습니다. 후회도 될 것이고...

어쩃든 그의 황금기는 이렇게 막을 내리며, 출소 후 프랑스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때 알프레드도 같이 동행했다고 하나, 그들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동성애" 라는 그 시대의 금기어를 어길정도로 시대를 너무나도 앞서나갔던 오스카 와일드

작가로써는 아름다운 예술혼을 지녔으며, 후대의 예술적 모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오스카 와일드

그는 프랑스 파리로 가 생에의 마지막 4년을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고,

1900년 겨울 파리의 공동묘지 페르 라셰즈의 한 귀퉁이에 초라하게 묻혔습니다.

1999년 그의 묘비에 누군가가 큰 립스틱 자국이 남는 키스를 했고,

이후 와일드의 묘소를 찾는 사람들이 키스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탐미주의"자 였던 그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찾은 여인들이 잠든 그에게

 애정어린 키스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 여기서 "탐미주의"란?

'미의 창조'를 예술의 유일지상의 목적으로 삼는 예술 사조로 '유미주의'라고도 합니다. 

이 사상을 알게 되시면, 그의 행적도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sdicon
sdicon
Posted by 워홀메이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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