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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역사- 제대로 알고 가자! 3편

 

 

 

 

 

 

전후 경제 붐을 탄 호주 이민의 새 물결 
 전쟁이 끝난 1945년 이후, 유럽과 중동으로부터 수십만 명에 이르는 이민자들이 들어와 다수가 당시 새로이 붐이 일던 제조업 부문에서 일자리를 얻고 정착하였습니다. 남편들이 참전하여 집을 비운 사이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던 부인들 가운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을 계속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호주 경제는 캔버라 근처 산악 지대에서 시행된 “스노위 마운틴 수력 발전 계획” 등 국가재건을 겨냥한 대규모 사업 등을 통해 50년대에 눈부신 성장을 이룩합니다. 호주의 주요 수출품인 금속, 모직, 정육 및 밀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증가하였으며, 이에 따라 호주의 교외 지역도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주택 보유율도 1947년의 40 퍼센트 수준에서 1960년대에는 무려 70 퍼센트 이상으로 급증하였지요.

 

 

 

호주, 여유를 찾다
1960년대에는 다른 여러 나라에서 그랬듯이 호주도 혁명적 분위기에 휩싸이게 됩니다. 새로이 자리를 잡게 된 인종 다양성, 대영제국으로부터의 독립성 증대 및 일반 국민들 사이에 만연했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분위기는 호주 전역에 걸쳐 정치, 경제 및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였습니다. 1967년, 연방정부가 원주민들을 대신하여 법을 제정할 권한을 가지며 이들을 장래의 인구조사에 포함시킬 것을 결정하는 국민투표에서 호주 국민들은 압도적 찬성 표를 던집니다. 그 결과 원주민과 백인 호주민들이 공히 개혁을 주장하는 캠페인을 벌이게 되었지요. 

1972년에는 변호사 출신 고프 위틀램(Gough Whitlam)의 이상주의적 지도 아래 노동당이 정권을 잡아 종전 이후 계속된 자유당-국가당 연립정부의 통치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집권 후 3년 동안, 위틀램 정권은 징병제를 철폐하고 대학 수업료를 없앴으며 전국민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합니다. 또한 백호 정책을 폐지하여 다문화주의를 포용하였고, 책임 사유 없는 이혼을 허용하였으며 여성 노동력에 대한 평등임금을 보장하는 입법을 도입합니다. 그러나 1975년을 즈음하여 극심한 물가고와 비리로, 총독은 당시 연방정부를 해산시킵니다. 노동당은 차기 대선에서 참패를 겪고 자유당-국민당 연합에 정권이 이양되어 1983년까지 연립 정부가 호주를 통치합니다. 

 

 

1970년대 이후
1983년에서 1996년까지, 호크-키팅(Hawke-Keating)을 선두로 한 노동당 정부는 은행 관련 규제 완화 및 호주 달러의 변동 환율제 채택 등 각종 경제개혁을 실시합니다. 1996년 존 하워드(John Howard)가 이끈 연립정부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 후, 1998년, 2001년 및 2004년 세 차례에 걸쳐 재선에 성공하게 됩니다. 자유당-국민당 연립정부는 세제 및 노사 관계 개선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입법화하였습니다. 2007년에 노동당은 케빈 러드(Kevin Rudd)의 지도 하에 호주의 산업 관계를 혁신하고 지구 온난화 관련 환경 정책을 수립하며 의료 및 교육제도를 개선한다는 공약으로 정권을 장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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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워홀메이커스 워홀메이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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