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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메이커스의 아일랜드 이야기 2편 - 아일랜드vs 영국 전쟁 블러디 선데이

 

 

여러분, "블러디 선데이"라고 알고 계시나요?

참고로 글루미 선데이 아닙니당~~~ ㅎㅎ

1920년 11월 21일 더블린과 티퍼러리의 게일 경기가 벌어지는 도중

영국의 발포로 선수와 관중 14명이 숨진 사건 입니다.

사유인즉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영국 정보요원을 암살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민간인을 상대로 영국군이 총을 발사했다고 합니다.

 

이 학살 사건은 일요일에 벌어져 아일랜드에서는 "블러디 선데이 (Bloody Sunday)라고 불립니다.

(참사현장이었던 크로크 파크)

 

자 그럼~ 슬슬 아일랜드ㅡ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외우기 힘든데, 사실 이게 무슨 오지랖인지 싶겠지만서도

가볍게 한번 읽어주시면 유익하지 않을까 싶네요~!

(요만큼만 읽어주시면 되세요 ^^)

 

아일랜드 어학연수 가시는 분들은 유식하게 "너네 이런 일 있지 않았었니?

나도 슬퍼...우리나라 역시 그랬었거든 .. " 뭐 이렇게 이야기 소재로 끌고 가셔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자 시작합니다!

우선 여러분은 "신페인" 이라는 단어를 알고 가셔야 합니다.

이 단어는 아일랜드 언어 갤릭어로써 "우리들 자신 or 우리들만으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905년 세워진 신페인 정당 이라는 아일랜드 당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1801년 아일랜드는 영국에 귀속되었지만, 영국과 아일랜드의 갈등은 16세기 부터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강제 강탈, 수탈! 우리나라 역사만 공부해도 익히 아시는 단어죠?!

아일랜드 같은 경우에는 특히 종교적인 탄압도 심했었는데요.

아일랜드는 카톨릭 국가인 반면, 영국은 신교인 성공회가 국교 였기 때문에

그 탄압의 강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종교마저 다른 국가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는데요.

 

(영국 왕비의 방문은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위자들)

 

특히 공식적으로 합병된 뒤로는 우리나라처럼, 독립을 위한 암살과 테러가 줄을 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세기를 거쳐서 영국에 핍박을 당한 아일랜드는 드디어 1916년 4월 24일

"코놀리" 지도하의 시민군과 아일랜드 의용군, 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단, 신페인당등이 연대하여

더블린 시에서 독립을 위한 무장봉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로 따지면, 좌우 합작 시나리오 쯤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여운형, 김규식의 좌우 합작연대로 보면 좋을듯 합니다.

다 알고 계시죠?

 

(1916년 부활절 선언문으로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주요 상징물)

 

비록 1주일간 영국군과 싸워서 진압이 되고 말지만,

미미했던 세력이었던 신페인정당은 총선거에서 105석 가운데 73석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래도 아일랜드에는 당을 만들고, 영국의회에 출석을 할수 있는 권한은 주어졌군요...

 

산페인 정당은 이에 힘입어, 영국 의회 출석 거부, 아일랜드 의회 창설, 독립을 선언하는데,

가만히 두고 볼수 없는 영국 정부는 대탄압을 시작합니다.

이와 맞물려 "블러디 선데이"라는 슬픈 사건이 발생이 되구 말았죠!! ㅠ....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일랜드 방문시 크로크 파크에 방문한 모습)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서 아일랜드는 여국이라는 큰 적을 상대로 완벽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채,

각 지도자들은 이념과 정치노선의 차이로 서로 분열을 하고 맙니다.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죠?!  독립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방법이 무슨 소용인지... 어휴..

 

2편으로 넘어 갑니다~~^^

 

 

sdicon
sdicon
Posted by 워홀메이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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